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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보문고, 광화문, 교보문고. 9월 15일.

9월 15일, 영어 스터디에 쓸 교재를 확정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그 아이'와 교보빌딩 앞에서 만나, 교보문고로 이동했다. 

교재 선정 과정에서 약간 이견이 있었던데다 서로 간에 말이 맞지 않아, 무교동 스타벅스로 가서 논의하기로 했다. 스타벅스에서 스터디 관련 이야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그렇고 그런 얘기였다. 배가 고파 무지하게 힘들다고 노래를 부르길래, '미진'에 데려가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필통이 오래돼 바꾸고 싶다기에 다시 교보문고로 향했다. 

핫트랙스에서 그 아이는 필통 이것저것을 뒤져 꺼내 보았고, 나는 노랑과 파랑으로 채색된 자잘한 체크무늬 필통을 추천해주었다.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며, 다른 필통 두어개를 들춰보더니, 나에게 "역시 이게 괜찮겠지?"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기왕 핫트랙스에 온 김에, 나는 포장지를 사기로 했다. 21일은 그 아이의 생일이었다. 그 날, 그 아이와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 전날이라도, 그 다음날이라도 선물을 줄 수 있다면, 내 스스로에게 그렇게까지 후회하진 않을 것 같았기에.

그 아이에게, '네가 마음에 드는' 포장지로 골라달라고 말했다. 꼼꼼하게 이 포장지, 저 포장지를 들춰보더니, 역시 포장코너에 있는 포장지가 마음에 든다며 다시 가보자 한다. 자주색이 감도는 붉은색 포장지가 마음에 든다고, 내게 말했다. 직원은 그 포장지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에게 선물할 때 어울린다며, 누구에게 선물할거냐고 답을 재촉하듯 물었다. 친구에게 줄거라고 무심히 답했고, 그 아이에게 '이게 괜찮다고?'라고 재차 확인했다. 그 아이는 그렇다 했고, 나는 그럼 그냥 그 포장지로 달라고 했다. 
 
포장지를 사고는 곧장 교보문고에서 나왔다. 그 아이에게, 교재 선정도 할 겸 우리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포장지가 4,500원이면 배가 배꼽보다 큰 거 아냐?"라고 걱정스럽다는 듯 내게 이야기했고, 나는 '어차피 뭘 바라고 주는 것도 아닌데'라며 쿨한 척 했다.


#1-. 집. 9월 15일.

교재 선정은 뒷전이고, 역시 시덥잖은 수다가 대부분이었다.

조금 특이했던 점이라면, 겁먹으라고 보여 준 법의학책을 재미있다는 듯 구석구석 꼼꼼히 넘겨보던 그 아이의 행동이었다. 다양한 사유로 끔찍하게 사망한 사체의 사진을 흥미있게 완독한 그 아이. 꽤나 의외였다.


다음 스터디는 언제로 할까, 라는 그 아이의 질문에, 난 짐짓 곤란하다는 듯 수요일(21일)이 아니면 스케쥴상 어려울 것 같다는 뉘앙스를 가득가득 풍겼다. 그 다음주 수요일은 그 아이의 생일. 전혀 모르는 채하며, 수요일로 하는게 어떻겠냐며 은근슬쩍 밀어붙였다.

그 아이는 "흠, 되려나"라며 잠시 망설였다. '실패했군', 좌절하려던 순간, 곧바로 ok 사인을 보내줬다.

겉으론 씨크한 척 했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2. 안팎. 9월 16일~20일.

하루하루가 고민의 연속이었다. 편지로 어떤 말을 전해야 감동할까, 무슨 선물을 해야 만족할까, 혹시 편지나 선물을 받고는 실망하지 않을까, 어떤 타이밍에 편지와 선물을 전해줘야 하는걸까, 당일날엔 무얼 해야할까......

5일간, 머릿 속은 온통 편지에 적어넣을 글귀와 그 아이에게 쥐어줄 선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친구들에게 어떤 선물을 줘야할지 지겹게 물어볼만큼, 같은 날 교보문고를 두번이나 들락날락 할만큼,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거지, 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을만큼,

나는 미쳐 있었다.

3개의 포장으로 나뉜 선물. 각 포장지마다 진심어린 편지를 써서 넣었다. 물론, 생일축하 편지는 별도.


#3. 대학로, 종로, 경복궁. 9월 21일.

만나기로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일찍 혜화역에 도착했다. 지각을 밥먹듯 일삼는 악당인 내가, 오로지 생일 케이크를 사기 위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오다니.

선물값, 포장비에 너무 많은 돈을 쓴 것이 겁이 나기도 하고, 덜컥 후회되기도 하던 참이라, 백화점에 가서 생일 케익을 사겠다는 계획은 포기하고, 대학로에 위치한 파리바게트로 선회했다. 애당초 목표한 바는 5,000원 가량의 미니 치즈케익이었지만, 파리바게트엔 없었다. 목표물이 없다는 걸 확인한 즉시 파리바게트를 나와, 곧장 맞은편에 위치한 뚜레쥬르로 이동했다. 뜌레쥬르엔 4,500원짜리 치즈케익이 있었다. 하지만, 이걸 생일 케익이라고, 선물이라고 들이밀기엔, 내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결국, 14,000원짜리 초코 케익을 사버리고 말았다.

약속시간에 도착한 그 아이에게, 아무 말 없이 불쑥 케이크를 내밀었다. 그 아이는 전혀 예상 못했다는 듯, 뭐야, 진짜 나 주는거야?, 뻥 치지마, 뭐하러 이런 걸 챙겨, 부담스럽네, 를 연발하다, 곧 너무 고맙다, 고 연발했다. 토즈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공부는 뒷전, 케익을 먹고 잡담을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공부하자, 고 한 순간. 그 아이는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하기로 한 책과 다른, 설명과 해답지가 첨부되지 않은 워크북 판을 열심히 풀어서 가져왔고, 서로 책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 우리는 제법 당황했다. 속도감있게 스터디를 진행하기 위해, 곧장 교보문고로 향했다.





#4. 대학로, 이태원, 집. 9월 27일.



#5. 집.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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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로부터, 43일이 지났다. 

 43번의 절망이 스쳐 지나갔고, 43번의 원망이 스쳐 지나갔다. 

 43번의 추억이 스쳐 지나갔고, 43번의 사랑이 스쳐 지나갔다.
 
 43번의 후회가 스쳐 지나갔고, 43번의 자책이 스쳐 지나갔다.


 43번의 눈물이 스쳐 지나갔고, 43번의 상실이 스쳐 지나갔다.

 43번의 만약이 스쳐 지나갔고, 43번의 미련이 스쳐 지나갔다.


 43번의 무의미한 하루가 스쳐 지나갔고, 43번의 밤이 술의 잔상으로 스쳐 지나갔다.

 43번의 그가 스쳐 지나갔고, 43번의 그리움이 스쳐 지나갔다.
 
 
 44번째의 날은, 그리움만 남길 것이다.

 45번째의 날은, 그리움에 다시 눈물을 보일지도 모른다.

 46번째의 날은, 그리움만 남길 것이다.

 그러나,

 47번째의 나날들은, 그리움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으로 기억되기를. 꼭 그렇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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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밤, 차였다.

 언제 헤어져도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이별 통보였다. 더더욱 쇼크였던 건, 절대 내가 차이지 않을 거라는 알량한 믿음 때문이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목을 맨 상황이었고, 그 아이는 아쉬울게 없는 상황이었다. 아쉬울게 없는 사람이 상대방을 먼저 내친다는 것은, 적어도 내 상식 선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아이는 나에게 고해성사를 했다. 항상 엿보이던 가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솔직하면서도 담담한 고백이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람의 감정이란게 본인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 이게 사랑이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이젠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서로에 대해 잘 아는 좋은 친구로 지내자, 쌀쌀맞게 굴었던 게 다 이유가 있었을텐데 왜 눈치채지 못했냐,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거다, 사실 처음부터 느낌이 오지 않았다...

 가장 슬펐던 말은, '미안해'.

 그리고. '내가 만약에 글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아플 일은 없었을텐데.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살아갔을텐데', 라는 말을 들으며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너 없이 어떻게 살아'라는 말에, '나를 만나기 전처럼 살아가'라고 답해주었다. 

 진정됐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자 다시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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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연예인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 하면, 거의 유일하게 꼽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이승기다. 그가 '내 여자라니까'로 가요계에 신성처럼 등장했을 때부터, 열렬한 팬이었다. 요즘이야 예능계의 황태자로 군림하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어 왠지 모르게 서운한 감도 있지만.  

 혈혈단신으로 한국을 떠났을 때에 유일하게 가져갔던 CD는 이승기의 음반이었고, 머나먼 타향에서 긴 밤을 지샐 때 켜두던 음악도 이승기의 음악이었다. 지독한 외로움과 씨름하던 마지막 소년기를 수놓은 것은 타국에서의 그의 음악이었고, 곧 그였다. 

 사람들은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이승기를 왜 좋아하느냐고. 귀여워서 좋아한다고 간단하게 답한다. 어차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방황하던 시기, 늘 곁에 있어주던 것의 가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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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이따금씩, 꿈에 터키가 나오곤 한다. 이번 주에는 심지어, 터키 이스탄불에서 에스키쉐히르가는 버스 타려고 꼬마애들한테 길을 물어보는 꿈을 꿨는데, 터키어/일어/영어 3개 국어를 섞어서 썼더랬다... en 近くbus turminal... 이라는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쨌든. 마음이 공허하거나, 기분이 울적할 때, 현재의 삶에 싫증이 날 때는 자연스레 터키가 떠오른다. 참, 터키는 내게 애증의 공간이랄까.. 도대체 뭔 마가 그렇게 끼었었는지, 터키에서 생활할 때는 사건사고가 좀 많은게 아니었다. 터키 도착한 바로 다음날 사기를 당한건 불행의 서막이었을 뿐.. '';  별 게이같은 놈한테 걸려서 지갑 털릴 뻔한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동네 애들이 중매서준다길래 그냥 재미로 어떤 애를 소개받았을 뿐인데 재수없게 깡패 동생한테 걸려가지고 맨날 나보면 죽인다고 그러고(;;), 한달 반 동안 못된 일본년한테 지대로 걸려서 몸종(;;)될 뻔 했던 적도 있고, 이간질한거 고자질했다 걸려가지고 눈치밥 제대로 먹고 결국 도피하기도 하고, 마침 이사했던 동네가 터키에서 땅값 제일 비싼 동네였는데 하필이면 우리집 뒤에 있는 골목이 슬램가여서(;;) 밤에 어디 여행갔다오거나 쇼핑하고 오면 무서운 동생(ㅜㅜ)들이 현관에서 마약하고 있고..;;

 위에 나열한거야 정도가 심했던 거고, 저걸로 상처받았다기보다는 자잘한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었었다. 지금이라면야 '인간관계가 다 그런거지'하고 맘껏 비웃어주겠지만, 그때는 나도 너무 어린데다 의지할 데라곤 전혀 없었다. 정말 힘들었다. 그저 믿을건 돈 뿐이었고, 대졸 신입사원 연봉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를 몇개월 만에 써버릴만큼 제정신이 아닌채로 살았었다. (덕분에 돈 쓰는 재미는 더 이상 못 느낀다. 그러나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절약가가 되어버리는..)

 그랬던 터키였는데, 참, 추억이란 것은 저 편한대로만 기억되는지, 이젠 나쁜 기억마저도 '재미있는 추억'으로 포장되어 버렸나보다. 디야르바르크 star otel 로비에 앉아 쿠르드 사람들과 밤새도록 떠들었던 기억도 너무나 그립고, 샤프란볼루에서 하루종일 동네 사람과 미치도록 수다를 떨며 돌아다녔던 기억도 이제는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일같이 알리 사이드하고 티격태격 싸웠던 날들이 눈에 선하다. 그때 왜 그렇게 싸웠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멍청하게도 지독히 말이지. 같이 먹었던 프스특르 바클라와, 베이지 케바브, 라흐마준, 이스켄데르 케밥. 다 기억난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터키 음식점에 가면, 다른 것 먹어보고 싶어도 항상 이스켄데르 케밥만 먹는데.. 눈물 날 것 같아. 벌써 헤어진지도 3년인가. 만나면 꼭 사과하고/받고, 예전처럼 같이 바클라와 먹으면서 농담이나 주거니 받거니 하고 싶은데. 이젠 다 지나간 얘기겠지. 

 요즘 왠지 모르게 힘들다. 뭘 해도 기운이 안 나고, 하루종일 무언갈 먹지 않아도 공복감이 생기지 않는다. 글도 잘 써지지 않고, 사람이라는 개체 자체가 염증이 나면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자살 체질이라는게 확실히 있나보다.

 ㅜㅜ 이런 글을 쓰려던게 전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망쳤네. 지금 오디오에 Ceza 1집 CD 넣어서 듣고 있는데, 감정타서 그런가보다. 이 노래, 터키 있을 때 참 많이 듣던 노래였으니까.

 음.. 그냥 난 진지해지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쇼타질이나 해야될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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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가족과 함께 터키에 갔다.
 
 오랜만에 돌아간 터키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린 황량한 국도 변에는 중앙아시아식 건물이 하나둘씩 올라오는 중이었다.

 
 악사라이 골목에 들렀다.

 한때 단골이었던 갈라타사라이 팬샵에 들어가, 이것저것 용품을 구경했다.

 
 샤프란볼루에 들렀다.

 언덕으로 올라가다가, 매일같이 점심을 해결하던 '무사카' 가게를 보니 왠지 슬퍼졌다.


 어느새, 교레메였다.

 동굴 지하같은 곳에 식당이 있었다. 

 터키 사람이 그리웠다. 4년 동안 전혀 쓰지 않았던, 터키어를 무던히 지껄여댔다.
 
 하지만 역시, 긴긴 시간의 벽은 꽤 두터웠다.

 더듬더듬대기도 하고,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기도, 또 요즘 공부하는 일본어와 터키어가 섞이기도 했다.
 
 그래도 터키 사람은 기특하다고 했다.

 쓸쓸하지만 행복했다.



 꿈이었다... 

 이번이 족히 6번째는 되는 듯 하다.

 이런 꿈을 꾸다가, 깰 때마다, 허무감보다는 뜨거운 그리움이 샘솟아오른다.


 아. 내가 죽거든, 부디 터키에 묻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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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귀우목(盲龜遇木).

 한 해를 결산하는 나의 '2009, 올해의 사자성어'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에 놓인 C(Choice)다"라는 샤르트르의 말처럼, 내게 있어서 올 한 해는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대개가 인생을 송두리 째로 뒤흔들 선택이었다.

 선택에 대한 후회를 뼈저리게 체감하던 2009년 한 해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다행인 것은 일본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참, 우연한 계기였다. 올해 초, 친구와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광화문에 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날 광화문 근처에서 금속노조가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신촌 방향에서 버스를 타고 오던 친구는 '조금 늦을테니 교보문고에 가서 기다려달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교보문고에 들어가서 책을 읽기로 했다. 늘상 그렇듯 무의식적으로 외국어 코너에서 서성이다, 어차피 시간을 때울 거라면 소설을 읽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소설 코너로 갔다. 정말 갑작스럽고도 우발적인 선택이었다.. 읽은 소설이라고는 중학교 때 읽었던 '마당깊은 집'이 마지막이었고,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지루해하다 못해 혐오하던 차였으니까. 

 그렇게 소설 코너에 갔던 나는 문득, 얼마전 yes24에서 서핑을 하다 우연찮게 발견한 '인간 실격'이라는 제목을 기억해냈다. 그리곤, 뭔가에 이끌리듯이 인간 실격을 찾아내고는 책을 펴서 마냥 읽기 시작했다. 참. 하필이면, 친구는 약속시간을 1시간 반을 넘기고서도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계속 '미안하다', '길이 너무 막혀서 택시를 탔다'라는 메세지만 불이 나케 왔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약 60여 페이지를 읽었다. 너무나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고, 한편으로는 서글픈 낭만이 느껴졌다.

 친구와 헤어진 후, 집에 와서 인간 실격을 주문했고, 며칠후 책이 집이 도착하자 방치했다.. 역시 소설은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끈은 참 얄궂었다. 막 개강 무렵이었는데, 통학 거리가 먼 탓에 너무 무료한 나머지 이 책을 가방에 집어넣어버린 것이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지하철과 버스에서 틈틈히 책을 읽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강의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어 수업 때.. (그 당시만 해도 히라가라를 알고 있는데다 시간도 마침맞게 맞아서 수강신청했던 일본어였다. 관심이 없으니 지루하기 그지없었는데, 5월달부터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자 수업이 너무나 재미있어졌다.. 그러다보니 학원 수업과 같이 병행하면서 꽤 도움이 되었다. 이 또한 우연이라면 우연이라 하겠다)

 어쨌든. 개강 직후, 학보사에 기자 지원서를 내고, 4월 쯤 학보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동기들보다 1살 많은 나이였던 탓에 약간 위치가 애매한데다, 결정적으로 수업이 끝난 후에 1~2시간씩 학보사에 와서 회의에 참여하라는(발언권도 없는데) 말에 기겁한 나는 어떻게든 도피하기 위해 '일본어 학원을 다녀야하기 때문에, 나오기 힘들 것 같아요'라는 뻥을 치기에 이른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칼퇴근을 사랑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뻥만 치고 그냥 집에 일찍일찍 하교하려고 했는데, 괜히 의심많은 선배들이 수강증 보여달라고 할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뭐 이 참에 일본어나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다 '문득'.. 결국 그렇게 5월 달부터 파고다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며, 나의 일본어 공부는 시작되었다.

 사실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자고 마음먹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걸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으로 가득했다. 인간 실격을 접한 이후, 다자이 오사무의 다른 작품들을 접하며 일본 문학에 대해 약간은 호의적으로 바뀌긴 했지만, 일본어 자체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나 나의 지긋지긋한 지구력은 알아줘서, 아무리 좋아하던 취미 생활도 일주일이면 질려버리고 만다. 그래서 일본어를 시작할 때는, 그냥 시험삼아 해보자는 마음 뿐이었다. "일본어를 내가 연말까지 계속한다면, 이건 나의 천직이다. 일본어로 진로를 바꾼다"고 결심한 때도 바로 이 때였다.
 
 5월달에 처음 시작한 일본어 공부가, 2009년의 마지막 날, 바로 오늘까지 계속될 줄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우연은 마치 필연처럼 이어졌다. 5월부터 8월까지 장장 4개월동안 함께했던 기초 일본어코스 강사의 재미있고 핵심적인 강의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학원 로비에서 강의실이 비기를 기다리다 우연찮게 보게 되었던 일본 드라마 '꿈을 이뤄주는 코끼리'를 지나치지 못했어도 마찬가지였을테다. 일본 드라마에 대한 기호가 식어가면서 동시에 일본어에 대한 애정이 떨어져가던 즈음 알게 된 다이고라든가, 무라카미 카즈시, 작가 요시다 슈이치 등을 알게 된 것 또한 적절한 시기의 행운이었다. 

 설렁설렁하게 공부한 결과가 어느새 JLPT 3급 자격증이 되어 돌아온다. 내 생애 최초의 어학시험 응시이자, 내 생애 최초로 갖게 될 어학시험 자격증. 돌이켜보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계기로 다자이 오사무를 알게 되면서부터 일본에 대한 혐오가 관심으로 바뀌어가고, 그 관심이 일본어 학습으로 이어지고, 또 적절한 시점에 가해지는 적절한 자극들. 

 
 끝없는 넓고 망망한 바다에 눈 먼 거북이 한 마리가 살고 있는데 이 거북은 백년마다 한 번씩 물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광활한 바다 위에는 한 개의 구멍 뚫린 나무토막이 떠다니고 있는데 이 나무토막은 한 곳에 가만히 정지돼 있는 것이 아니라 출렁대는 물결에 밀려 사해를 떠돌아 다닌다고 한다. 눈 먼 거북이 백년이 되어 물위에 머리를 내밀 바로 그때 요행히 그 머리 위에 나무토막이 있어야, 그것도 나무토막의 구멍과 거북의 머리가 일치해야만 거북은 나무토막에 의지하여 물위에 떠올라 숨을 쉴수 있다.

 거북이 해상의 어느 시점에 떠 올랐을 때 마침 그와 만나진다는 것은 몇 천만, 몇 억의 시공적 교차 중의 하나인 만큼이나 어려운 노릇이다. 거북이 떠 올랐을 때 만일 널빤지가 빨리 지나가거나, 좀 더 늦게 온다면 거북은  별 수 없이 다시 바다 밑으로 내려가 다시 1백년을 기다렸다가 다음 떠오를 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마침 널빤지가 거북의 머리 위에 와있다손 치더라도 그 또한 거북이 떠 오르기 전에는 역시 만나지지 못하게 된다. 

 맹귀우목의 고사다. 내가 주저없이 '2009,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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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What the hell?"과 "...."

위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데, 소비자를 대하는 점원들의 행태에 대해 좀 비판하고자 한다. 이건 제와히르(Cevahir)라는 유럽에서 2번째로 큰 쇼핑몰에서 있었던 좀 짜증나는 사건인데,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터키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할 때였고 차라리 못하는 영어가 더 편할 때였다. 탁심에 새로 집을 얻고(이게 내 터키 생활의 재앙의 근원이었다..) 이것저것 잡기며 인테리어 소품을 사다나르기 바빴다. 라디오도 들을겸, 음악CD도 들을겸해서 카세트를 사려고 제와히르에 갔다. 전자제품 판매점을 마땅히 찾기 어려운데다 유럽에서 2번째로 큰 쇼핑몰인만큼 각양각색의 점포들이 입주해 있어서 아이쇼핑하기도 좋기 때문이었다. 그 큰 제와히르에 전자제품 종합매장은 2군데 뿐이었는데 하나는 테크노SA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어쨌든. 그 기억이 안나는 점포에 들어가서 카세트를 하나 샀다. 아마 중국제품이었던걸로 기억한다. CD플레이 기능만 있고 대략 3만원 정도했는데 싸고 괜찮아보여서 샀다. 문제는 이로부터 발생했다...

탁심에 집을 얻은 관계로 쇼핑하기가 좋아서 우리나라로 치면 교보문고+핫트랙스 같은 곳에 자주 들락날락 거렸다. 나도 이젠 문화생활을 해야겠다며 큰 맘먹고 샹송CD를 샀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와서 CD카세트에 넣고 재생을 하는데 아무리해도 소리가 안난다..

결국 짜증났지만 소심함을 가슴 한켠으로 억지로 누르고 제품을 교환하러 다시 그 매장에 갔다. 매장에 들어가려고하니 경비원이 그거 뭐냐고 그러는거다. 그래서 난 이게 고장나서 교환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제법 친절하게 소비자센터까지 안내해줬다. 그런데 망할...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가서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서 약간 미친애처럼 생긴 애(?)가 막 상담원한테 고래고래 소리질러가며 무조건 환불해달라고 하는게 아닌가. 아마 내가 나갈때까지 한 1~2시간 동안은 상담원하고 열심히 싸웠을거다... 처음엔 난 그 사람을 보면서 '어글리 터키쉬'라고 생각하며 저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뭘 하겠느냐, 터키인들은 너무나 성질이 급한 것 같다, 상담원이 불쌍해서 내가 저 인간한테 욕 좀 갈기고 싶다 등등 온갖 잡생각을 다하면서 한심한 듯 쳐다보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해가 갔다.. 30분을 기다려서야 겨우 접수할 수 있었고, 새로 들어온 인간들은 자꾸 나를 새치기하였다... 그리고 더 웃긴건 상담원이 나를 아예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30분이 더 지나서야 카세트가 고장난게 맞다며 교환해주겠다고 했고, 그 뒤로는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나를 내팽겨쳐뒀다... 잘생긴 남자 상담원(하앍하앍)이었는데 나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아까 그 사람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여자 상담원이 나를 가르키며 먼저 온 것 같은데 처리해줘야되는거 아니냐고 남자 상담원한테 말했다. 나는 그 순간에 맞춰 폭발했다. "What the hell !!"을 외치며 몇시간이고 기다리는데 이게 뭐냐고 열불이 나서 따졌다. 다들 놀랐겠지. 다른 상담원하고 싸우고 있던 그 미친애처럼 생긴 애도 놀라서 쭈삤했을 정도였다. 근데 남자 상담원 모습이 볼만했다 ㅋㅋ 욕먹으니 화가 나면서도 당황한 모습이란 ㅋㅋ 그러면서 하는 변명이 나는 니가 터키어할 수 있는지 몰랐다, 나 영어 모른다였다 ㅋㅋ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 내가 그냥 똑같은 제품으로 교환해달라고 하자, 나를 데리고가서 똑같은 CD카세트의 새제품을 들고 왔다. 내가 쫌 미심쩍어서 시험해보자하고서 시험해보니 새제품도 불량이었다... 또 가져온 것도 불량이었다... 한마디로 내가 가져온 고장난 CD카세트와 똑같이 재생이 안되는 것이다. 결국 4번째 개봉한 새제품만이 정상이었다.....;;; 솔직히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분이 많이 상했다. 내가 그렇게 제품가지고 점원하고 실랑이벌인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1~2시간동안 기다리면서 기만당한 소비자주권에 대해서도 참 갑갑했다. 그것도 '친절하고, 기한 안에 언제든지 환불이 가능'하다고 쇼핑백에다 박아놓은 대형매장에서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내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이와 똑같은 일을 아다나 오토갈에서 목격했다. 당시 난 카이세리에 가기위해 아다나의 오토갈에서 표를 사고 버스 출발시간까지 장장 5~6시간 정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엔 오토갈 안에서 막 돌아다니다가 재미없어서 버스회사 사무실에 들어가 앉아서 어떤 정서불안의 여성과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난후 버스회사 사무실 부스에 한 젊은 청년이 와서 앙카라였던가 하타이였나 여하여튼 다른 지역으로 가는 버스표가 오늘 있는지 직원에게 문의했다. 그런데 더럽게 불친절하게 대답도 하는둥 마는둥이었다. 그 젊은이는 한 10분 정도 기다리다가 다른 버스회사 부스로 갔다. 그래서 난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그날이 뭔날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어느 특정지역의 표가 유난히 부족했는지 많은 사람들이 여분의 표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그 젊은이가 다시 내가 있던 그 버스회사의 부스로 다가왔다. 그런데 아까 씹혔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온게 좀 민망했는지 입술을 '앙'물고 와선, 다시 버스 시간과 표에 대해서 물어봤다. 이제는 아예 대답도 안해주더라.. 그리고 줄이고 뭐고 상관없다는 듯이 사람들이 막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직원에게 어느 지역으로 가는 표가 있냐 없냐, 어느 지역으로 가는 표를 사겠다고 야단이었다. 웃기는게 버스회사 직원은 그 사람들에겐 열심히 표도 팔고 질문에 대답도 나름 제대로 해주고 있었다. 그 사이 나는 그 젊은이에게 집중했다. 그는 매우 화가 나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소심한 성격탓인지 한판 지대로 따질려고 벼르다 참고, 다시 벼르다 참고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거즘 10분에서 20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젊은이는 화만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중간 중간 계속 최대한 예의바르게 버스 표에 대해 질문했지만 계속 씹혔다.. 결국 분이 치밀어 올랐는지 그냥 다른 버스회사로 갔다...;;;

정말이지 나도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결국 이로 인해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은 2가지 였다.

교훈 : 역시 중국제품답다! // 한국에서건 터키에서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5. 보드룸에서 썩을 놈의 출국심사관

그리스의 로도스섬이 너무나 가보고 싶어, 로도스섬으로 떠나는 배가 출발하는 기점인 보드룸으로 떠났다. 사실 보드룸도 뭐 계획이 있어서 간게 아니라, 알리 사이드와 조금 알력이 생겨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버려야겠다는 생각에 찍은 곳이 보드룸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보드룸이라는 동네가 있는지도 몰랐고 지중해쪽으론 별로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혼자 해변에 가봤자 무슨 낙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가이드북보니 보드룸에서 로도스섬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해서 겸사겸사 정한 것이었다. 버스 시간이 잘 안 맞아서 에스키셰히르에서 이즈미르에 갔다가 이즈미르에서 보드룸으로 갔다. 보드룸에서 있었던 얘기라면 할 말이 많지만 주제에 걸맞게 썩을 놈의 출국심사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로도스섬으로 가는 배는 일정상 시간이 안 맞아 가지 못했고, 대신 마지막날 펜션에서 체크아웃을 한 뒤 시간대가 맞는 코스섬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배표를 예약했다. 드디어 보드룸에서의 마지막날, 펜션에 있었던 종업원, 휴양객들과 친해진 덕에 기분좋게 인사하고 펜션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온 뒤, 선착장으로 갔다. 구석탱이에 있어서 힘들게 찾아갔더니 잠시 대기한 이후에 예약증을 승선권으로 바꿔주었다. 그리고 터키에서 그리스로 가는 배이기 때문에 승선하려면 먼저 출국심사대를 통과해야 했다. 당연히 아무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바로 그게 오산이었다. 재수없는 출국 심사관을 만난 것이다! 승선객이 많아 짜증이 났는지 괜히 툴툴대면서 신경질을 내면서 출국도장을 찍어주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됐다. 괜히 지랄을 하는게 아닌가! 모자 벗어라, 왜 여권사진하고 너하고 다르게 생겼냐, 가만히 좀 서있어라, 껌 좀 씹지마라 등등 별의별 지랄을 다한다. 심지어는 안경까지 벗으라고 했다... 뒤에 사람들도 많은데 진짜 민망했다. 그러더니 그리스에 오늘 갔다 오늘 올거냐면서 괜히 신경질을 낸다. 내가 당연히 오늘 올거라니까 말 똑바로하라고 지가 되려 신경질이다. 내가 한판 붙으려다 참았다. 내가 이런 수모를 받으면서까지 여행을 해야하는가 하는 자괴감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 코스섬가서 내가 불법체류를 하겠냐, 아님 마약밀수를 하겠냐? 한심해서... 덕분에 그날
터키인에 대한 이미지는 무척 나빠졌다.


- To be continued...인데.. 
 이 글을 쓴게 올해 2월 1일인데, 벌써 6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컨티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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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있었던 꽤나 어이없지만 생각해보면 추억거리로 남을만한 우습거나 황당한 에피소드들...

실제로 겪은 것이나 한국에 귀국한지 어언 5개월이 다 되어가므로 100%는 아닐 수도 있음. 메모를 안하는 성격상 IQ 125의 머리를 믿는 수밖에.. 참고로 시간 순서가 아니라 그냥 생각나는 에피소드 순으로 정렬했고 귀찮아서 앞뒤 전개과정을 잘라낸 경우도 있으니 주의 요망...;;;


#1. 반으로 가는 버스에서..

사프란볼루에서 친해진 한국인 남매 여행객 2명과 함께 도망치듯 이스탄불로 온 뒤,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스탄불에 남았고 난 그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반(Van)으로 가기 위해 에센레르 오토갈에 갔다. 사실 원래는 반을 갈려고 했던게 아니었는데 솔직히 가고 싶은데도 없는데다 당시 오토갈에서 딱히 다른 지역으로 가는 버스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세계를 헤멘다 간다'를 보고 그냥 반에 가기로 맘먹었다. 아마 내 기억엔 그 전까지만해도 도우베야짓 갈려고 마음 먹었었던 것 같았다. 어차피 난 여행이란게 마음 가는데로 몸 가는데로 떠나는거라 생각하기에 가끔은 우습게 보이겠지만 배낭메고 오토갈에 일단 간 뒤에 그곳에서 어디로갈까 결정한 후 10분만에 표를 산 적이 상당하다... 하지만 자유가 없는 여행은 '확인사살(어떤 분의 여행기에서 읽은 뒤로 신념이 되었다. TV켜면 나오고, 인터넷켜면 나오는게 유물이고 유적인데 그것만을 쫓아 힘들게 고행하는건 여행이 아니라 '확인사살'에 불과하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굳게 믿기에 남을 의식하진 않는다... 어쨌든. 반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Van gölü였을텐데 버스표 찾기 귀찮아서 생략. 낮 12시~1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매표원 말로는 약 24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난 그제서야 아뿔싸 실감이 났다. 돈 쫌만 더주면 비행기타고 1시간 30분이면 가는 것을... 결국 24시간동안 어쩌나 정말 걱정했다. 그전까지만해도 최장 버스탑승기록은 19시간 30분이었다. 그때는 승무원이 나랑 동갑이었는데 그냥 귀엽고 계속 말걸어서 시간이 금방갔던 편이었다. 그런데도 힘든건 사실이었다. 헌데... 24시간이라니.. 거의 절망적이었다. 결국 버스는 출발했다... 얼마 가지않아 잠들었다. 2, 3번 깼다. 그리고 일어나니 놀랍게도 아침이었다!!! 더욱 놀라운건 바로 옆에 반호수가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몇 시간을 잤는가는 상상에 맡기겠다... 2시간 정도 뒤에 반에 도착했다...

#2. 내가 터키인으로 보이니? 별난 Van의 아이들..

터키는 무지 더운 나라다. 최근엔 국토의 급격한 사막화로 인해 습윤한 지역인 트라브존 일대의 '카라데니즈 지방'을 제외하곤 거의 전국토가 사막화되었다. 덕분에 내가 동부를 한창 여행할때인 7~8월동안 대낮의 온도는 40~45도에 육박하였고, 심지언 밤에도 20~3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잠도 못잘 정도였다... 한창 열심히 의욕적으로 돌아다니고 나니 쉽게 타는 나의 피부체질상 금방 쿠르드족(;;)처럼 되어버렸다. 때문에 가끔 나보고 터키인이냐고 묻기도 했고, 아니라고 하면 그럼 너희 아버지가 터키인이냐 아님 어머니가 터키인이냐 묻기도 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카자흐스탄 사람이냐 키르기즈스탄 사람이냐 묻기도 했다.. 살은 시커멓게 탔지, 터키어도 제법하지..;;;

여기서 #1과 연결된다. 반에 도착한 후, 그 유명한 호샵성에 가려고 하였으나 반의 시청에 들어가서 관광과에 문의한 결과 공사 중이라고 못간다고 했다. 할수없이 그냥 '반성(Van Kalesi)'에 가려고 미니버스 출발지를 찾는데 보이지가 않는다.. 현지인들한테 물어봐도 다 모른다고 그러거나 제대로 안 알려줘서 헤맸다.. 애들한테 물어보니까 직방이었다... 애들은 외국인을 좋아하는걸 간파한 나는 구두닦이를 하는 아이에게 미니버스 타는 곳을 알려달라고 하니까 제법 자세히 알려줬다. 길건너편 골목으로 요리조리해서 갔는데 뭐 도통 알 수가 없다.. 어떤 사람한테 물어보니까 여기서 타는게 아니라고만 하고 말을 끊는다... 제길.. 그런데 그 사람 옆에있던 아이가 나한테 저기서 탄다고 하면서 끌고 가는 것이다. ㅋㅋ 덕분에 금방 탔다. 대신에 애들이 막 몰려들어서 양말 팔아달라고 그러는 바람에 좀 혼났다..

미니버스를 타고 반성 앞에서 내렸다. 그런데 도통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약간 헤메니까 막 애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막 자기네가 길을 안내하겠다고 그러는 것이다. 뭔가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머리속에 퍼뜩 지나갔다. 애들이라면 좋아라하고 안심하는 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실제로도 무언가 잘못돌아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애들 10여명도 막 나를 둘러싸더니 사람들이 올라가는 저쪽은 절대 입구가 아니고, 자신들이 입구를 알고 있다며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우습지만, 평소 내 성격답지 않게 단칼에 너희들 못믿겠다고 그 아이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리고 어떤 아저씨에게 가서 입구가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자신도 저 아이들 못믿겠다면서 쟤네들 믿지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차에 타라고, 입구(매표소)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아저씨의 친절 덕분에 꽤나 먼 입구까지 자동차로 잘 갔다 ㅋㅋ 아저씨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차에 동생과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아이들을 믿을 수 없었던 이유는 돈을 바라는듯한 냄새가 풍겼기 때문이었지만, 어쨌든 모르겠다... 옛날에 디야르바크르에서 애들한테 휴지 강매당한 뒤로 좀 겁먹어서 여유를 잃은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Anyway.. 반성은 그다지 볼게 없었다. 성이라기보단 성곽의 터라고 보는게 옳을 것 같기도 했다. 화려한 궁전이 있는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산성같은 느낌이었으니. 그래도 거기서 그 유명한 '반호수'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어서 기분은 좋았다. 좀 을씨년스럽고 어둑어둑해질 것 같아서 내려왔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가려고 미니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어디서 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차고 놀고 있던 아이에게 버스 어디서 타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여기서 타면 된다고 기다리라고 하길래 기다렸는데 버스가 그냥 지나갔다... ㅠㅠ 그래서 좀 더 기다려보라고 하길래 알았다고 거기서 한동안 기다렸다. 여느 쿠르드족 아이들이 그렇듯이 좀 많이 지저분해보였지만, 그래도 착하다는 느낌이 너무나 강하게왔다. 내 느낌 그대로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내가 너 쿠르드족 맞냐고 물어보니 맞단다. 역시 이 뛰어난 직감 ㅋㅋ 그러더니 나한테 형은 어디서 왔냐고 묻는게 아닌가. 그래서 늘 그렇듯이 Kore(한국)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 그런다. 기특했다. 그리고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아이들이 몰려왔다. 걔네들이 나하고 얘기하던 그 아이보고 '저 사람 어디 사람이야' 묻는걸 얼핏 들었다. 답변이 나를 경악케했다...;;;

"터키인이래"

아니, 아까 내가 한국인이라고 할때 '아, 그렇구나' 한건 뭔데...;;; 여하여튼 결론은 착한 아이였다...

반(Van)은 아이들이 각양각색이고 특이했다... 꽤나 많이...


#3. 테키르다에서... 도우베야짓에서... 카이세리에서...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솔직히 잘해 나는 터키어를 잘한다. 또 솔직히 말해 나는 터키어를 잘 못한다. 무슨 말인가하면, 회화(Conversation)는 정말 잘한다. 공부를 게으르게해서 단어를 거의 안 외웠다. 하지만 시의적절하게 단어를 끼워맞추고, 필요한 단어를 모를 경우 다른 단어를 잘 조합해 말을 이어나가는데는 거의 천부적이었다. 참고로 난 토멜에서 기초 1단계에선 전체 차석, 2단계에선 전체 수석을 맞은 수재다 으하하!! 그것도 공부 안하고!! 그건 내가 터키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회화(수다)는 수준급이었지만 문법 공부와 단어 공부를 등한시한 관계로 리딩(Reading)에는 쥐약이었다.

각설하고... 가끔 내가 외국인인 관계로 터키애들이 영어로 나한테 말을 걸 때가 있다. 그럴 땐 난감할 때가 있다. 영어를 써야하나, 터키어를 써야하나... 나중에 되니까 입에서 터키어가 먼저 반응해서 거리낌없이 터키어를 썼지만, 초반엔 터키어가 틀릴까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하고 나 영어 쓸줄 안다고 자랑하고 싶은 소인배의 마음이 발로하는 바람에 괜히 일이 꼬였던 적이 많았다.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은 이스탄불에서지만 맨 나중에 적고, 테키르다의 Ahmed Salih 집에 있을 때다. 애가 별로여서(조금 꽤..;;), 얼른 테키르다로부터 도피하려고 몰래 시내로 가서 Metro 회사에 갔다. 내가 딱 들어가니까 남자 2명과 여자 매표원 1명이 있었는데 나를 보니 흠칫 놀라는게 아닌가.. 테키르다가 외국인이 출몰할 가능성(0.01%)과 이 버스회사에 지금까지 외국인이 단 한명이라도 들어왔을만한 가능성(0.0000001%)을 순간적으로 헤아려보다가 나도 흠칫 놀랐다..;;;; 터키 남자 한명이 역시 터키인스럽게도 자기 영어 잘한다며 으스대며 말을 걸어오는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터키어를 쓰자니 또 이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것 같고, 영어를 쓰자니 나도 막상 입에서 잘 안나오고 저 사람도 왠지 망신당할 것 같아 속으로 망설였다. 결국 영어를 썼다.... 저 사람들이 터키어로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듣는 상태에서.... 난 별수없이 영어로 나 그리스 가고 싶은데 테키르다에서 출발하는 국제버스노선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남자는 뭐 예상했듯이 저 단어가 기억이 안난다는 핑계를 대며 통역을 회피하고 있었고, 여자 매표원도 조금 당황했다. 결국 여자 매표원은 잠깐만 기다려 보라더니 컴퓨터에서 영-터 문장번역기를 켰다. 순간 울컥했다... 내가 터키어 비싼 돈 주고 배워놓고 이런 꼴깝짓을 떨어야하는 거지... 다행히 내가 쓴 영어가 매끄럽게 터키어로 번역되서 나왔고 내일인가 출발한다고 했다. 난 알았다고 다음에 생각해보고 오겠다고 했다....

2번째 도우베야짓에서... 그 유명한 사루한(맞나?) 오텔(여관임..)에 갔다. 반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도우베야짓으로 갔는데 이상한데다 내려줘가지고 찾는데 무지 애먹었다.. 직원이 영어로 말하길래 그냥 터키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그 사람하곤 계속 터키어로 얘기했다. 난 이번엔 테키르다에서 있었던 그 뻘짓을 안하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과 마지막날까지 그 직원 대신 오텔 주인이 날 응대했다. 그땐 입에서 영어가 나오지도 않을 정도로 입이 굳었을 때였다.. 헐... 마지막날 결국 체크아웃한다고 해야될게 'I wanna go outside(아마 이랬을거다)'하고 돈주고 나갔다... 할아버지 한명이 있었는데 좀 당황하더라... 나중에 알고보니 주인의 아버지였다는..;;;

3번째 카이세리... 고고학박물관에 가기 위해 열라리 걷고 있었다. 대낮 온도 35도 육박... 30분 넘게 걸었다. '세계를 헤맨다', 역시 가이드북의 최정상답게 그 지도보고 따라갔다 길을 잃었다...;;; 어쨌든 열심히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왠 잘생긴 남자가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그러는거다. 순간적으로 뭐냐 이러고 봤다. 생긴게 게이 같았다... 터키애였다. 터키에서 사기도 좀 당해보고 이상한 얘기도 많이 들어서, 터키애가 한국어를 쓰면서 지나가는 나한테 그러니 이상했다. 역시나... 다른 터키애가 하나 더 나한테 붙더니 자기 카페트가게에 가잔다..;; 싫다니까, 다행히 게이같이 생긴애가 착하게 고고학박물관까지 가는 법을 알려줬다..;;; 심심하면 놀러오라던데 안 갔다.. 예상했겠지만 이것도 영어로 삽질했다... 이때 나의 터키어는 무르 익을데로 무르 익을 때였는데 정말 머저리짓 했다... 근데 걔네들 영어 되게 잘했다.

이스탄불 얘기는 좀 길고 독립적인 얘기라 4번 챕터에서 다루겠다.

- To be continued...


#4. "What the hell?"과 "...."
#5. 보드룸에서의 망할 출국심사관
#6. 디야르바크르에서 꼬마애들과 한바탕 싸운 사건.. ㅡ.ㅡ;;;
#7. 터키 도착한 바로 그 다음날 사기당한 사건...;;;
#8. 한국으로 돌아오던 마지막날, 간단한 욕 한마디로 수화물 할인을 받고 출국 심사대를 부드럽게 빠져나온 사건... (절대 나쁜거 아님)
#9. 마르딘에서 받은 친절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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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블로그는 극히 긴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블로그 주인님이신 아슬란(Aslan; 즉 저를 가르키는거겠죠) 님의 순수 창작물을 게시함을 원칙으로 합니다. 즉, 거의 모든 게시물은 아슬란님의 IQ 125의 쌈빡한 지능과 초고속 타이핑의 결합품임을 한시도 잊지 마세요. 터키 및 쿠르드 관련자료 역시 제 네이버 블로그인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쿠릭)에 이전에 올렸던 자료들을 티스토리로 옮긴 것에 불과하고,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아슬란의 시시껄렁한 이야기'에 독점적으로 새로운 터키 관련 컨텐츠들이 차곡차곡 게재될 것입니다.

 그니까 제발 불펌하시지 말아주세요. 불펌하시면 제 마음도 불편해지잖아요.

 
 Postscript) 사실 저도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미지 마구 포스트에 갖다 붙이는데, 이러다 걸리면..;;;; 비상업적 목적으로 쓰는거니 싸대기 한방 크게 날리시고 쿨하게 용서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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