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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03
    잎.
  2. 2009/10/06
    윤동주와 다자이 오사무.
  3. 2009/04/03
    만년(晩年)
  4. 2009/03/29
    인간, 실격.
  소설은 좋아하지 않지만, 다자이 오사무 선생의 작품이라면 예외다. 다자이 선생 탄생 100주년이었던 작년, 정말 우연찮은 계기로 접하게 되었던 '인간실격'은 나에게 있어 하나의 구원과도 같았다. '언젠가 선생의 글을 모두 번역하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은 나의 진로를 180도 바꿔놓았고, 그 마음은 지금까지도 한 치의 변함이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난데없이 발칙한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 는 과욕. 그것도 다자이 선생에 버금갈만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몹시 사특한 욕망이.

 참으로 가소롭다. 소설이건 영화건, 하다 못해 TV 연속극이건, 이야기라면 일단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이 이야기를 쓰겠다니. 

 그래도 쓰고 싶다. 죽기 전에 소설 하나 쯤 써두는 것이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닐 테니까. 내가 품어왔던 생각들, 내가 바래왔던 이상들을 활자로 녹여내는 작업은, 역시 매력있는 작업일 것이다. 머리털을 얼마나 쥐어뽑아댈 지는 논외로 치고서 말이다.

 소설을 쓰게 된다면, 다자이 선생의 '잎'이라는 단편 소설을 흉내내고 싶다. 그렇다. 흉내를 내는게 아니라, 흉내를 내고 싶을 뿐이다. 어차피 흉내를 낼 능력도 안 되는게 현실이지만.

 '잎'은 다자이 선생 작품 중에서도 내가 가장 각별히 여기는 작품이다. '인간실격', '사양'도 물론 훌륭한 작품이지만, '잎'에 비하면 밀도와 폭발력 모두 부족하다. 다자이의 작품 중 대중에게 제일 사랑받는 작품이라 하면 역시 '인간실격'과 같은 중편군이겠지만, 개인적으로 다자이 문학의 정수는 단편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갈한 표현과 세련된 문장은 그야말로 우아함의 극치다.

 死のうと思っていた。ことしの正月、よそから着物を一反もらった。お年玉としてである。着物の布地は麻であった。鼠色のこまかい縞目が織りこめられていた。これは夏に着る着物であろう。夏まで生きていようと思った。

 역시, 닮고 싶은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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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인의 작풍은 부끄러움의 미학으로 불린다. 일제 강점이라는 시대적 현실과 별다른 저항을 할 수 없었던 자신 간의 괴리, 일종의 프러스트레이션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런 상황을 윤동주 시인은 부끄러움 혹은 속죄양을 모티프로 한 자기 반성적인 시풍으로 승화시켰다.
 
 다자이 오사무 또한 수치심을 작풍의 모티프로 삼은 대표적 문호이다. 다자이는 윤동주 시인과 마찬가지로 시대적 현실에 대해 체념해버리고 마는데, 윤동주 시인이 식민지의 속민으로서의 절망감을 느꼈다면, 다자이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망에 대해 반발심을 느낀 것이 미세한 차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프러스트레이션이라는 똑같은 출발 선상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작풍은 판이하게 달라지는데, 윤동주 시인이 자기 반성으로서 프러스트레이션을 극복하고자 했다면, 다자이는 철저한 자기 파괴로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자 했다. 즉, 같은 출발점이었지만, 한 명은 자기 반성을 통해 자신과 현실 간의 괴리를 점차 좁힘으로써 현실에 순응하고자 하였다면, 다른 한 명은 자기 파괴를 통해 자신과 현실 간의 괴리 자체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윤동주 시인의 얘기가 나오면 항상 다자이가 자동적으로 연상되곤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역시 윤동주 시인보다는 다자이 쪽에 마음이 뺏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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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으려고 했다. 올 설날, 옷 한 벌을 받았다. 설빔으로. 옷감은 삼베였다. 잔 줄무늬가 있는 쥐색 옷이었다. 여름에 입는 옷일 것이다. 여름까지 살아있자고 생각했다.

 * 그녀는 그 포장마차를 나와 전차 정류자으로 가는 도중, 시들기 시작한 좋지 않은 꽃을 세 사람에게 건넨 일을 뼈아프게 후회했다. 갑자기 길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종잡을 수 없는 말로 격렬하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일본어 두 마디를 속삭였다.
 "꽃이 피기를. 피기를."

 * 사포는 미인이 아니었다. 피부가 검고 이가 튀어 나왔다. 파온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청년에게 죽도록 반했다. 파온은 시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의 투신을 한다면 멋지게 죽지는 못해도 애태우는 가슴속 그리움은 지울 수 있다는 미신을 믿고 레우카디아 곶에서 성난 파도를 향해 몸을 던졌다.

다자이 오사무, 단편집 '만년' 중 '잎'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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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을 싫어한다. 앞에서부터 꾸역꾸역 성실하게 읽어나가야 하는게 소설인데, 뒤죽박죽인 내 성격하고는 영 맞지 않는 탓이다. 템포가 더뎌지거나 내용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좀체 몸이 근지러워 참을 수가 없다. "이 부분, 도대체 무슨 말이람", "슬슬 눈이 감기네". 그렇다고 건너 뛰어버리면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거라. 그래서 소설 한 권 전체를 통독했던 적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조지 오웰의 '1984' 이후로 없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든가, 개미라든가, 의뢰인이라든가 하는 소설 책 읽기를 시도는 해보았으나 채 절반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앞서 언급한 '그리스인 조르바'의 경우내내 재밌다고 킥킥대고 읽어놓곤, 지금까지 3개월이 지나도록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원체 소설을 사는 법도 없다. 장식용이라도 소설은 왠지 모를 압박감을 주곤 하기 때문에. 그런데 정말 우연찮은 계기로 알게 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이상하게도 나를 끌여당겼다. 나의 의식을 온전히 녹여낸 듯한, 마치 자화상같은 이야기. 모 대형 서점에서 50여 페이지를 읽고는, 곧바로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별안간 나를 홀린 소설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끄러운 생애를 살아 왔습니다. 
  내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인간 실격'. 

 자전적 수기 형식으로 써있는 이 소설은, 대단히 쉽게 읽히고 분량 또한 많지 않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다. 여성 편력기나 자아 파괴, 수치의 기록으로만 치부해 버린다면, 이 소설은 단순한 '우울증 환자의 수기', 그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주인공 '요조'가 세상의 부조리와 잔혹함에 의해 처절히 파괴 되어가는 과정을 뛰어난 통찰력으로써 풀어가고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인간 실격'의 진정한 묘미다.

 "이제 내겐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읽는 내내, 다자이 오사무와 주인공의 일생이 오버랩 되곤 했다. 과연 어느 부분이 허구이고, 어느 부분이 다자이의 실제 경험인지 혼동되기까지 했을 정도로, 심리 묘사가 매우 탁월하다. 단, 주의할 점은 있다. 어떠한 문학 작품이든 어느 정도의 현실성과 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작품'이 되기 마련이다. '인간 실격'은 대단히 음울하고 자기 파괴적이며 갑갑하기까지 하다. 가슴이 턱 막혀오기도 하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내가 '인간 실격'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현실감과 공감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비슷한 성장 환경과, 비슷한 정서적 불안감, 비슷한 허무주의적 감상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 책을 습작이라며 내던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서평을 보다보니, '인간 실격'의 작품성을 폄훼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느니, 주제가 없다느니, 재미 없다느니, 음울하다느니. 

 고로 앞서 한 말에 덧붙이자면, 인간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관심이 있거나, 우울한 경험이 있거나 혹은 현재진행형인 사람,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그렇다고, 우울증 환자라든가 심신박약자들만 읽으란 법은 없다. 다만, 주인공을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어야만 흥미를 느끼고 무시무시한 현실감을 체험할 수 있으므로, 매사 긍정적인 마인드를 소지하신 제현들께서는 독서를 삼가시는게 바람직해 보인다. 그만큼 멜랑꼴리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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