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당(みんなの党)은 2009년 8월 8일에 결성된 일본의 정당이다.
역사
자유민주당을 2009년 1월 13일에 탈당한 와타나베 요시미(渡辺喜美)가 중심이 되어 발족한 정치단체 '국민운동체 일본의 여명'을 전신으로 중의원 해산 후인 8월 8일에 결성해, 8월 10일에 총무성에 정당결성을 신고하여 수리됐다. 아직도 '일본의 여명'은 후원 조직으로 존속하고 있다.
동당에는 무소속으로 활동해 온 에다 켄지(江田憲司) 등 5명의 전현직 국회의원이 참가했다. 와타나베는 기자회견에서 '관료에 의존하는 자민당, 노조에 의존하는 민주당과는 다르다,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있는 것이 모두의 당이다'라고 호소하며, 정계개편의 움직임을 내다보고 당을 창당하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제 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13명 공천에 2명의 후보를 추천했고, 국가공무원 10만명 삭감 등의 공무원제도 개혁을 골자로 한 매니페스토(정권공약)를 발표했다. 비례블록(광역 비례대표-역주)에서는 토후쿠, 북간토, 도쿄, 남간토, 토우카이, 킨키, 큐슈 등 7개 블록에 후보자를 냈다(홋카이도, 호쿠리쿠신에츠, 츄고쿠, 시코쿠에는 후보를 내지 않았다).
선거 결과 5명이 당선되어, 정당요건을 충족시켰다. 비례구에서는 7개 블록의 득표수 만으로, 11개 블록 전체에 후보를 낸 사회민주당에 육박하는 득표수를 획득했고, 남간토, 북간토 블록에서는 일본공산당을 상회하는 득표를 올렸다. 킨키 블록과 토우카이 블록에서는 비례 단독후보였다면 각 블록 1석으로 도합 2석을 획득했겠지만, 소선거구와의 중복 입후보자의 득표율이 공탁금 몰수점에 못 미쳐, 하위의 비례 단독후보가 없었기 때문에 비례대표 당선자격이 있는 후보가 존재하지 않게 되어, 2석은 타당에게 배분되었다.
2009년 9월 16일 제 172회 국회에서 실시된 수상지명 투표에서는 당론으로 하토야마 유키오에게 투표했다. 9월 17일에 민주당이 수뢰죄로 실형판결을 받고 상고 중인 스즈키 무네오(鈴木宗男)를 외무위원장으로 선출하는 인사안을 발표했을 때, 외무위원장 선출에 대해 의장 일임의 동의에 반대했다.
11월 8일의 카츠시카구의원 선거에서 1석을 획득했고, 12월 1일에 무소속으로 활동하던 참의원의 카와다 류헤이(川田龍平) 의원이 입당했다(참의원 내에서 그밖에 회파를 구성한 의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종전처럼 '각 파에 속하지 않는 의원(원내회파를 구성하지 못한 의원-역주)'으로 분류되고 있다). 2010년 마치다시의원 선거(도쿄도-역주)에서는 무소속 추천 1명을 포함한 2석을 획득했다.
2010년 5월 30일 치뤄진 아이치현 오오하루읍장 선거에서, 모두의 당이 단독 추천한 이와모토 요시히로(岩本好広)가, 현직 시장을 누르고 첫당선 되었다. 모두의 당이 단독 추천한 후보가 시.읍.면장 선거에서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창당선언 (발췌)
지금 국민들은 '자민당에게는 불만이 가득하지만, 민주당으로는 불안하다', 이것은, 그렇게 돈을 뿌려서 이 나라의 장래는 괜찮은 건가, 공무원 노조 의존으로 공무원 감축이나 급여 삭감은 등 행정개혁 관련의 매니페스토가 정말로 실현가능한 건가, 자민당 이상으로 당내 분란이 심한데 관료주도의 정치를 바꿀 수는 있는 건가, 외교와 안보 정책은 일원화가 가능한 건가 등등 염려가 끝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불안이나 염려를 가진 유권자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민당이 이러저러니, 민주당이 이러저러니, 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정치 그 자체'를 변화시켜 가고 싶다. 이를 위해서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특정한 업계나 노동조합에 의존하지 않고, 국민 한명 한명에게 뿌리를 내린 정당, '모두의 당'을 결성하기로 했다.
정책
기본 이념은 탈관료, 지역주권, 생활중시.
- 국가공무원 수와 급여 삭감, 낙하산 인사 전면금지, 규제완화에 의한 경쟁촉진, 공공사업 민주화에 의한 '탈관료' 및 작은 정부 노선.
- '조건부 보조금'과 지방교부세 폐지에 의한 지방으로의 재원이양 및 지역주권형 도주제(현행 47개의 도도부현을 10개 정도로 통합하는 광역 행정구역 개편-역주)의 도입을 통한 '지역주권'.
- 경제성장에 의한 고용창출 및 안전망 구축을 통한 '생활중시'.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이 제창했던 신자유주의와 '작은 정부' 노선을 정책의 기본으로 해, 규제완화에 의한 경쟁촉진, 공공사업의 민주화, 지방분권, 경제의 대외개방, 트리클다운 이론(대기업 성장중시 정책-역주)을 중시하는 등 고이즈미의 '성역없는 구조개혁'과의 공통점도 많지만, 대표인 와타나베가 '고이즈미 개혁은 어중간하다'라고 논하는 등, 보다 더 급진적인 부분도 있다.
아울러, 모두의 당은 개혁클럽(현재 '신당개혁'으로 당명변경-역주)과 마찬가지로, 당론 구속이 없다.
지지조직
와타나베는 '(모두의 당은) 지원단체라고 하는, 조직도 단체도 아무것도 없는 맨주먹의 정당'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나, 재계 등과 적극적으로 의견교환이나 회동을 갖는 등 발언에 모순도 보인다.
- 일반지지자
닛케이 라디오가 실시한 개인투자자 대상의 인터넷 조사에서는, 정당지지율이 50%로 1위였다. 와타나베는 '인터넷 여론조사에서는 지지(율)가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반응이 즉각적이기 때문에, 인터넷이 보다 실제에 가까운 숫자가 나온다. '선행지표'로서 가치가 있는 듯 하다.'라고 평했다.
소속 국회의원
- 중의원 의원
와타나베 요시미(渡辺喜美) - 토치기현 3구
에다 켄지 (江田憲司) - 카나가와현 8구
야마우치 코이치 (山内康一) - 비례 북간토 블럭
가키자와 미토 (柿沢未途) - 비례 도쿄 블럭
오사오 케이치로 (浅尾慶一郎) - 비례 남간토 블럭
- 참의원 의원
카와다 류헤이(川田龍平) - 도쿄 선거구
집행부
대표 : 와타나베 요시미
간사장 : 에다 켄지
정조회장 : 오사오 케이치로
국회대책위원장 : 야마우치 코이치
역대 모두의 당 대표일람
1代 : 와타나베 요시미 (현) - 2009년 8월 8일~
당세의 추이
- 중의원
창당시 : 4명 (공식적으로는 0. 하기 참조)
제 45회 총선 : 당선자 5명/입후보자 15명
- 참의원
창당시 : 1명 (총선 공시에 따라 0명. 하기 참조)
- 모두의 당 창당 시점은 중의원 해산 후였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창당시 소속된 중의원 의원의 수는 0이다. 여기에서는 총선거 입후보로 의원직을 자동상실한 참의원 의원 1명(오사오 케이치로-역주)을 포함해 해산 당시에 의원 신분으로 창당에 참가한 인원을 의석수로 했다.
정당교부금
창당시, 제 45회 총선거 결과, 정당조성법에 의거한 정당요건을 국회의원 5명 이상-비례구에서의 득표율 2% 이상을 모두 충족시켜, 2009년 10월 20일에 8월 31일 분부터의 정당교부금이 지급되었다.
2009년 : 1.1억엔
2010년 : 3.6억엔
원문 : 일본어판 위키백과 (全文 번역)
2010년 5월 4일 05:01 첫작성.
2010년 6월 10일 01:45 내용 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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