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싫어한다. 앞에서부터 꾸역꾸역 성실하게 읽어나가야 하는게 소설인데, 뒤죽박죽인 내 성격하고는 영 맞지 않는 탓이다. 템포가 더뎌지거나 내용이 지루해지기 시작하면 좀체 몸이 근지러워 참을 수가 없다. "이 부분, 도대체 무슨 말이람", "슬슬 눈이 감기네". 그렇다고 건너 뛰어버리면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거라. 그래서 소설 한 권 전체를 통독했던 적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조지 오웰의 '1984' 이후로 없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든가, 개미라든가, 의뢰인이라든가 하는 소설 책 읽기를 시도는 해보았으나 채 절반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앞서 언급한 '그리스인 조르바'의 경우내내 재밌다고 킥킥대고 읽어놓곤, 지금까지 3개월이 지나도록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연유로 원체 소설을 사는 법도 없다. 장식용이라도 소설은 왠지 모를 압박감을 주곤 하기 때문에. 그런데 정말 우연찮은 계기로 알게 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이상하게도 나를 끌여당겼다. 나의 의식을 온전히 녹여낸 듯한, 마치 자화상같은 이야기. 모 대형 서점에서 50여 페이지를 읽고는, 곧바로 온라인으로 주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별안간 나를 홀린 소설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부끄러운 생애를 살아 왔습니다.
내게는 인간의 생활이라는 것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인간 실격'.
자전적 수기 형식으로 써있는 이 소설은, 대단히 쉽게 읽히고 분량 또한 많지 않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만만히 볼 것이 아니다. 여성 편력기나 자아 파괴, 수치의 기록으로만 치부해 버린다면, 이 소설은 단순한 '우울증 환자의 수기', 그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주인공 '요조'가 세상의 부조리와 잔혹함에 의해 처절히 파괴 되어가는 과정을 뛰어난 통찰력으로써 풀어가고 있는데, 바로 이 부분이 '인간 실격'의 진정한 묘미다.
"이제 내겐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 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읽는 내내, 다자이 오사무와 주인공의 일생이 오버랩 되곤 했다. 과연 어느 부분이 허구이고, 어느 부분이 다자이의 실제 경험인지 혼동되기까지 했을 정도로, 심리 묘사가 매우 탁월하다. 단, 주의할 점은 있다. 어떠한 문학 작품이든 어느 정도의 현실성과 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작품'이 되기 마련이다. '인간 실격'은 대단히 음울하고 자기 파괴적이며 갑갑하기까지 하다. 가슴이 턱 막혀오기도 하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내가 '인간 실격'에서 이러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현실감과 공감이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비슷한 성장 환경과, 비슷한 정서적 불안감, 비슷한 허무주의적 감상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이 책을 습작이라며 내던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서평을 보다보니, '인간 실격'의 작품성을 폄훼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느니, 주제가 없다느니, 재미 없다느니, 음울하다느니.
고로 앞서 한 말에 덧붙이자면, 인간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관심이 있거나, 우울한 경험이 있거나 혹은 현재진행형인 사람,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그렇다고, 우울증 환자라든가 심신박약자들만 읽으란 법은 없다. 다만, 주인공을 공감하거나 이해할 수 있어야만 흥미를 느끼고 무시무시한 현실감을 체험할 수 있으므로, 매사 긍정적인 마인드를 소지하신 제현들께서는 독서를 삼가시는게 바람직해 보인다. 그만큼 멜랑꼴리한 책이다.
Trackback 0 and
Comment 0
Pr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