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간략하지만 '터키인의 행복론'이란 주제로 기고를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터키인의 행복론을 고찰하기에 앞서서 이슬람의 기본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슬람(Islam)'이라는 단어는 어근 slm에서 나온 것으로, 이 어근의 뜻은 '복종하다', '항복하다', '자신을 바치다'라는 뜻입니다. 이 어근이 사용된 문장의 실례를 보면 "aslama amrahu ila Allah", 즉 '그는 하나님의 의지에 자신을 맡겼다'는 뜻으로 slm이란 어근이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slm이란 어근은 또한 '서로 화합하다', '화해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절대자(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써 평화를 얻는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이슬람은 이름 그 자체로 '신에 의한 평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염원하여 마음에 평안을 얻는 자들, 하나님께 대한 염원에 마음의 평안이 없겠느냐? 믿음을 가지고 많은 선행을 하는 자들, 이들에게 은총과 아름다운 귀향지가 주어질 것이다." (코란 13:28-29)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슬람은 현세에 대한 복락보다는 내세에 대한 희망이 신앙의 근간이 됩니다.
고로 터키인들의 사상 저변에도 현세보다는 내세에 무게를 두려는 무의식적 사고가 짙게 깔려 있는데, 이는 터키인, 나아가 무슬림들을 이해하는 척도가 됩니다. 터키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을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평화로워 보인다'고 혀를 내두르는데, 이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힘겹더라도 꾹 참고 견딘다면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터키인들은 야망이 없어보인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 또한 반목과 대립이 거듭되는 현세를 낮게 취급하는데서 비롯됩니다. 어떻게 보면 허무주의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역으로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욕망의 기대치를 적절히 낮춤으로써 사소한 것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로 느껴집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바삐사는 한국인들이 한심해 보일 뿐이죠. '성실', '근면'이라는 말로 포장해가며 아둥바둥 거리는 것 같아도 돈도 욕구도, 그 어느 것 하나도 채우고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스스로를 제어하고 주관적인 행복을 찾아나갈 줄 아는 터키인들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저작자:아슬란 (외부기고문. 200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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