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꿈에 터키가 왕왕 나온다. 예전엔 터키어를 덜 까먹은 상태였기 때문에 꿈에서 나름 자유자재로 터키어를 구사했지만, 터키어를 거의 잊어버린 지금은 꿈에서 터키를 가더라도 터키어와 일어를 혼용해서 사용하더라. ''; 이상한게, 꿈에서 터키를 가면 성인 남성은 안 나온다. 대화 상대는 대개 여자고, 어린 남자애들만 엑스트라로 출연한다. 뭐지? 무의식의 세계가 궁금..
꿈에 터키가 자주 나온다는 얘기는, 결국 터키에 엄청 가고 싶다는 말. 맨날 입으로는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사실 그렇게 가고 싶지는 않은 일본이 꿈에 나와본 적이 없는만큼.
모든게 아름답게 포장된 추억이고, 가봤자 별거 없는거 뻔히 아는데. 그래도 다시 가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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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클라와를 처음 맛본 것은, 아마 4년 전으로 기억한다. 터키에 출장차 갔다온 분이 선물로 줬다며, 알리 싸이드가 나한테 먹어보라고 권했던 것이 스타트였다. 입맛에 무지 잘 맞아서, 알리 싸이드랑 둘이서 신나게 한 600g 쯤 먹었던 것 같다. 여행 가이드북 '세계를 간다'에 바클라와를 가리켜 '너무 달아서 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라고 써있는 걸 본 것은, 훗날의 이야기..
터키에 가서는, 한풀이 하듯, 본격적으로 바클라와를 흡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기네 나라 음식을 잘 먹으니 기특하다는 듯 엄마 미소로 쳐다보더니, 나중엔 하도 바클라와를 쳐묵쳐묵 해대니 기겁을 하더라. 여행을 어느 도시로 가건, 눈에 가장 눈을 켜고 찾는건 제과점.
카파도키아 우르귭의 제과점에서, 아이스크림 얹은 바클라와 1접시는 홀에서 먹고, 'bir kilo'는 포장해 간댔더니, 점원의 표정이 '이 새킨 정체가 뭐야'하는 표정. 아직도 생생하다.
터키에서의 파란만장했던 유학 생활을 접을 무렵에는 이스켄데르 케밥에 홀릭하는 바람에 바클라와에 대한 애정이 좀 쳐졌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아타투르크 공항에서 무려 5만원을 주고 바클라와 2박스 사왔을만큼 격하게 좋아했었더랬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로도 바클라와를 잊지 못해 가끔 꿈에 나올 정도였었고.
오늘 포털사이트에서 '바클라와'로 검색해봤다. 먹고 싶어서. 내일이 내 생일이니깐. 이태원에 있는 살람 베이커리에서 바클라와를 판매한다는 첩보를 입수, 5분간 미쳐 날뛰었다. 오늘 당장 달려가서 사와야지..
바클라와도, 이스켄데르 케밥도 모두 알리 싸이드가 좋아하던 음식들이었다. 탄투니도 그랬고. 내가 좋아하는 터키 음식들은 거의 대부분이 알리 싸이드를 계기로 해서 처음 시식했던 거다. 알리 싸이드가 맛있다면 나도 맛있었고, 알리 싸이드가 좋다면 나도 좋았다. 마냥.
바클라와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을지 모른다. 추억에 잠기고 싶은 것일테니까. 그래도, 미각을 통해 달콤하게 음미해보는 추억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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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따금씩, 꿈에 터키가 나오곤 한다. 이번 주에는 심지어, 터키 이스탄불에서 에스키쉐히르가는 버스 타려고 꼬마애들한테 길을 물어보는 꿈을 꿨는데, 터키어/일어/영어 3개 국어를 섞어서 썼더랬다... en 近くbus turminal... 이라는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쨌든. 마음이 공허하거나, 기분이 울적할 때, 현재의 삶에 싫증이 날 때는 자연스레 터키가 떠오른다. 참, 터키는 내게 애증의 공간이랄까.. 도대체 뭔 마가 그렇게 끼었었는지, 터키에서 생활할 때는 사건사고가 좀 많은게 아니었다. 터키 도착한 바로 다음날 사기를 당한건 불행의 서막이었을 뿐.. ''; 별 게이같은 놈한테 걸려서 지갑 털릴 뻔한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동네 애들이 중매서준다길래 그냥 재미로 어떤 애를 소개받았을 뿐인데 재수없게 깡패 동생한테 걸려가지고 맨날 나보면 죽인다고 그러고(;;), 한달 반 동안 못된 일본년한테 지대로 걸려서 몸종(;;)될 뻔 했던 적도 있고, 이간질한거 고자질했다 걸려가지고 눈치밥 제대로 먹고 결국 도피하기도 하고, 마침 이사했던 동네가 터키에서 땅값 제일 비싼 동네였는데 하필이면 우리집 뒤에 있는 골목이 슬램가여서(;;) 밤에 어디 여행갔다오거나 쇼핑하고 오면 무서운 동생(ㅜㅜ)들이 현관에서 마약하고 있고..;;
위에 나열한거야 정도가 심했던 거고, 저걸로 상처받았다기보다는 자잘한 인간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었었다. 지금이라면야 '인간관계가 다 그런거지'하고 맘껏 비웃어주겠지만, 그때는 나도 너무 어린데다 의지할 데라곤 전혀 없었다. 정말 힘들었다. 그저 믿을건 돈 뿐이었고, 대졸 신입사원 연봉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를 몇개월 만에 써버릴만큼 제정신이 아닌채로 살았었다. (덕분에 돈 쓰는 재미는 더 이상 못 느낀다. 그러나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절약가가 되어버리는..)
그랬던 터키였는데, 참, 추억이란 것은 저 편한대로만 기억되는지, 이젠 나쁜 기억마저도 '재미있는 추억'으로 포장되어 버렸나보다. 디야르바르크 star otel 로비에 앉아 쿠르드 사람들과 밤새도록 떠들었던 기억도 너무나 그립고, 샤프란볼루에서 하루종일 동네 사람과 미치도록 수다를 떨며 돌아다녔던 기억도 이제는 뼈에 사무치도록 그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일같이 알리 사이드하고 티격태격 싸웠던 날들이 눈에 선하다. 그때 왜 그렇게 싸웠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멍청하게도 지독히 말이지. 같이 먹었던 프스특르 바클라와, 베이지 케바브, 라흐마준, 이스켄데르 케밥. 다 기억난다.. 덕분에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터키 음식점에 가면, 다른 것 먹어보고 싶어도 항상 이스켄데르 케밥만 먹는데.. 눈물 날 것 같아. 벌써 헤어진지도 3년인가. 만나면 꼭 사과하고/받고, 예전처럼 같이 바클라와 먹으면서 농담이나 주거니 받거니 하고 싶은데. 이젠 다 지나간 얘기겠지.
요즘 왠지 모르게 힘들다. 뭘 해도 기운이 안 나고, 하루종일 무언갈 먹지 않아도 공복감이 생기지 않는다. 글도 잘 써지지 않고, 사람이라는 개체 자체가 염증이 나면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자살 체질이라는게 확실히 있나보다.
ㅜㅜ 이런 글을 쓰려던게 전혀 아니었는데, 쓰다보니 망쳤네. 지금 오디오에 Ceza 1집 CD 넣어서 듣고 있는데, 감정타서 그런가보다. 이 노래, 터키 있을 때 참 많이 듣던 노래였으니까.
음.. 그냥 난 진지해지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쇼타질이나 해야될라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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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은 연구소/터키
2010/06/21 14:23
터키 관련 포스트, 완전 오랜만. 터키에 있을 때, 미친듯이 후렴구만 읊어댔던 노래였는데,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터키있을때 듣던 mp3'라는 폴더에서 발견하고는 어찌나 옛날 생각나면서 반갑던지.
이 노래를 내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 나는데, 얼핏 드는 기억으로는, 하숙집에서 TV보다가 우연찮게 노래를 접하고 마음에 들어서 어디 메모지에다 노래 이름을 적어놨다가 나중에 인터넷에서 확인한 것 같다. 나이먹고, 술먹고 하니까 그런지 점점 기억력이..
어쨌든. 이 노래에 대한 확실한 기억과 추억은, 내가 터키에 있던 2007년 봄에서 여름 무렵, 대히트를 쳤다는 것. 내가 만난 사람들 모두 이 노래 얘기하면 '아, 그거!'하고 금세 알아차렸고, 특히나 알리 사이드는 내가 이 노래 얘기하니까 '이거, 요즘 장난 아니다'라고 하면서 곧바로 가사를 흥얼거렸을 정도.
터키 노래치고는 꽤 서구풍인데다, 뮤비나 멜로디 모두 상당히 관능적. 거기다 후렴구 'Romeo~', 이 부분이 완전 중독성 있어서 줄창 읊고 다녔더랬다.
아, 옛 생각나고 좋다. 뮤비에 노란 택시들 나오는데, 오랜만에 보니 너무나도 정겹다. 방심하면 바가지 씌워주는, 날강도 색희들 ^^ 저기 어딘 줄 알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 예니카프에서 시르케지 가변 따라 있는 성벽인데... 아시는 분, 댓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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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나에게 있어, 그곳은 지독히도 강렬한 기억이다.
가장 뼈저린 아픔을 겪은 곳이지만, 또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겪은 곳.
그곳에서 보낸 날들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기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하다. 어설프게 냈던 인간 흉내가 창피하고, 또 창피하니까.
3일 연속으로, 터키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의 그 곳은 너무나 행복한 곳이었다. 친구들도 여전했고, 풍경도 여전했다.
잠에서 깼을 땐, 숨이 턱 막혔다.
그런 날이면, 하루는 이미 끝난 것이다.
이제는, 아무에게도 터키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내 친구들은 아직도 나를 '터키쉬'니 하는 별칭으로 부르지만,
역시 구차한 영웅담은 입에 꺼내고 싶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하지만. 가끔은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가 없다. 어쩌면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건지도.
그럴 때면, 터키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처럼, 조용히 술을 꺼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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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은 연구소/터키
2010/04/25 23:03
전에 터키에서 한국 돌아오기 전에, 열심히 학습한(!) 속어(슬랭)들 대강 정리해놓은 파일 있었는데 찾기 귀찮다.. 대충 생각나는 것만. 속어나 욕설도 있지만, 쓰면 터키애들 재미있어할 만한 것들도 섞여 있음. 터키어 3년 넘게 안 썼더니 그닥 생각이 안 나네.
18금입니다, 유저 여러분..
Bana ne?
내가 뭐?
: 주로 어린애들이 쓰는 말로, 어른이 쓰면 유치하거나 다소 코믹한 느낌을 줌. '내 알 바 아니야', '내가 왜?'의 어감. 책임 회피적 뉘앙스. 아이처럼 능청스럽게, 혹은 상대방을 약올리듯이 쓰면 효과가 좋다.
Sana ne?
니가 뭔데?
: '너하고 관련 없는 일이거든'의 어감으로, 'Sana ilgilendirmiyor(당신과 관련 없는 일이에요)'의 격식 없는 반말체. 상대방을 향해 짜증스러움을 담아, 포효하는 사자처럼 이 짧은 문장을 한껏 내지르면 된다. 점점 음을 높여 발음하다가, 'ne' 부분에서 음을 늘여 발음함과 동시에 갈고리와 같이 날카롭게 찍어 발음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잘못 쓰면 싸움을 부르기 쉽상.
Öküz.
젖소.
: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욕. '젖소!', '졌다고?'와 같은 상황이 되기 쉽상. 하지만, 터키인에게는 상당한 강도의 욕설이다. 주로 난폭한 운전자에게 쓰인다. 바가지를 씌우는 택시 기사에게 한 번 실습해보자. (왕창 바가지 씌운 택시 기사에게 썼더니, 가운데 손가락이 날라왔다)
Şerefsiz.
치욕스러운 것. 불명예스러운 놈.
: 15세기 조선 다이너스티를 연상해서 구닥다리 욕설이라고 얕보기 쉽지만, 현재 터키에서 사용되는 욕설 중 단연 최고 위용을 자랑한다. 우리나라 욕설로 번역하면, '너 같은 쉑히가 인간이냐?' 또는 '개 만도 못한 쉑히' 수준. 애쉑히, 개쉑히, 10쉑히, 18쉑히, 간나쉑히, 애자쉑히, 쥐쉑히, 병진쉑히, 샹쉑히, 초딩쉑히, 바보쉑히 따위와 같이 '쉑히' 하나 만으로도 별도의 수식어 없이도 수십가지의 욕설이 조합가능한 한국어와 달리, 터키어에는 욕설의 종류가 풍부하지 않은 탓에 강한 욕으로 기능할 수 있는 듯.
Allah kahretsin.
싑할.
: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국어의 '싑할'에 정확히 대응한다. '싑할' 쓸 상황에, 'Allah kahresin'을 써주면 99% 맞다.
Allah cezanı versin.
저주 받을 색희.
: 직역하면 '신의 저주가 내리기를'. 심하다면 심할 욕이지만, 자꾸 들으면 그냥 무덤덤해지는 욕. 그렇지만, 왠지 사람 찜찜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음.
Köpek.
개쉑히.
: 내 경험으로는, 주로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이 욕을 썼다. 애들은 거의 쓰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 세계 어딜 가나, 개하고 얽혀서 좋을 건 없다.
Boş ver/Olsun.
신경 쓰지마/쓸 필요 없어.
: "신경 끄삼!"의 뉘앙스라기보다는, "내가 알아서 할테니, 신경 꺼도 돼"의 뉘앙스가 강하다. 조금 더 나아가면, '잊어버려~'의 의미도 가질 수 있다 하겠다. 속세를 초월한 사람처럼 숨을 깊게 내쉬며, "Boş ver"라고 하면 보다 효과적이다. 손등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가볍게 떨치며 말하면 금상첨화다. 'Olsun~'도 비슷한 의미.
Bırak.
내비둬! 그만둬!
: 주로 수세적 상황에서 쓰는 말로, '그만두라고!'의 뉘앙스가 강하다.
Kolay gelsin!
수고하세요.
: 직역하면, '쉽게 되세요'. 가게에서 계산을 마친 뒤, 이 말을 써주면 가게 주인들이 티나게 웃던 기억이 난다. 외국인이 써주니까 좋아한 듯.
Lanet olsun!
망할!
: '망할', '제길', '싑할' 등에 대응한다.
Top.
브랄.
: 확실한 용법을 확인할 수는 없으나, 다섯손가락을 오므리며 사용한 것을 목격. 속어로서, 한국어의 '브랄'에 대응하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게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는 것을 확인(쿠르드족 소년/청년이 사용). 여성스러운 남성이나 약해보이는 남성에게 경멸조/농담조로 쓰는 속어가 아닐까 추측. 용례가 명확하게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본 페이지에 등록.
Fıstık gibi uhm uhm~ 또는 Fıstık gibi + 체언/용언.
쭉쭉빵빵(여자를 향해)/아주 좋은.
: 'fıstık'은 피스타치오를 뜻하고, 'gibi'는 '~처럼'을 의미한다. 따라서 직역하면 '피스타치오처럼(같이)~'이라는 말이 되는데, 한국인의 정서로는 이해가 선뜻 가지 않지만, 터키인들은 피스타치오를 정말 좋아해서 그런가보다. 지나가는 예쁜 여자를 보면서 한량들이 저들끼리 'Fıstık gibi 음음음~'을 외치곤 한다. 이 때 '음음음~'에서 뒤로 갈 수록 음이 약간씩 높아지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다섯 손가락의 끝을 한데 뭉쳐모아 약간씩 흔들어 댄다는 점이다. '아주 좋은'의 의미로도 쓰이긴 하는 것 같지만, 주로 예쁜 여자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눈을 감아주고, 다섯 손가락을 모은 것을 흔들어주며, '음음음~'을 감칠맛나게 발음해준다면, 당신은 완벽한 색골로서, 터키 'kabadayı' 세계에 손쉽게 편입할 수 있다.
Manyak.
또라이.
: 한국어 '미치다'에 대응하는 터키어로는 'manyak'과 'deli'가 있는데, 이 중 'deli'는 '또라이'의 의미보다는 '웃기다', '4차원이다', '완전 산만하다', '날뛴다' 등의 의미로서, 들어도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은 뉘앙스이다. 그러나 본 'manyak'은 진짜로 '미쳤다'의 의미로 사용되어, 들으면 기분 팍 상한다.
이외에도 manyak은 우리나라의 '존나'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다. 한국의 어린 아해들이 속어로 '존나 좋아'라고 말하듯, 터키에서도 manyak을 다른 말 앞에 붙여 강조의 의미를 나타낸다. 우리나라의 '존나', '미치도록'에 100% 대응한다고 보면 되는데, 예컨대 'Manyak kötü'는 한국어의 '존나 구려'에 해당한다. 당연히 격식을 차려야할 자리에선 쓰면 안된다.
Kes!
닥쳐.
: 열혈 터키남아들 싸울 때, 옆에 가서 잘 들어보면 자주 들을 수 있다. 한국어의 '조용히 해!'에 대응하는 'Sus!'가 다소 무례하더라도 일단은 사용가능한 반면, 'Kes!'는 예의 문제를 떠나 상당히 과격한 표현임에 유의.
* 터키어를 사용하지 않은지 어언 3년째인지라, 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다, 기억에 왜곡이나 변형이 가해져있을 수도 있으므로, 아시는 분께서는 댓글을 통해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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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가족과 함께 터키에 갔다.
오랜만에 돌아간 터키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린 황량한 국도 변에는 중앙아시아식 건물이 하나둘씩 올라오는 중이었다.
악사라이 골목에 들렀다.
한때 단골이었던 갈라타사라이 팬샵에 들어가, 이것저것 용품을 구경했다.
샤프란볼루에 들렀다.
언덕으로 올라가다가, 매일같이 점심을 해결하던 '무사카' 가게를 보니 왠지 슬퍼졌다.
어느새, 교레메였다.
동굴 지하같은 곳에 식당이 있었다.
터키 사람이 그리웠다. 4년 동안 전혀 쓰지 않았던, 터키어를 무던히 지껄여댔다.
하지만 역시, 긴긴 시간의 벽은 꽤 두터웠다.
더듬더듬대기도 하고,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기도, 또 요즘 공부하는 일본어와 터키어가 섞이기도 했다.
그래도 터키 사람은 기특하다고 했다.
쓸쓸하지만 행복했다.
꿈이었다...
이번이 족히 6번째는 되는 듯 하다.
이런 꿈을 꾸다가, 깰 때마다, 허무감보다는 뜨거운 그리움이 샘솟아오른다.
아. 내가 죽거든, 부디 터키에 묻어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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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캐빈에서 항공권 뒤적거리다, 이스탄불 왕복항공권 32만원에 나온 걸 발견하고, 너무나 환장한 나머지 말도 안되를 연발하였다. 거기다 유효기간 2개월. 오스트리아 항공.. 뭔가 찝찝하긴 했지만, 아, 나도 드디어 다음 달이면 2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청운(?)의 꿈을 품었다.
그럼 그렇지... 2회 경유다. 택스가 항공권을 풀쩍 뛰어넘을 것이다라는 판단이 뇌리를 스쳐지나가고, 확인해보니 예상 택스만 63만원이다... 합쳐서 100만원.. 내가 북경하고 빈에 가서 뭐할거냐고.. 경유하면 고생은 고생대로 할테고, 택스만 63만원이면.. 터키항공 직항으로 62만원 짜리 나왔던데, 그거 타는게 싸겠다. 지금 글 쓰면서 확인해보니, 터키항공 직항으로 택스포함 79만원이다.. 가고 싶다......아아아아.. 이렇게 싼 거 처음보는데... 주식 탈탈 털고, 가서도 좀 아껴쓰고 친구들한테 신세지고 하면 어떻게든 일주일은 버티겠는데, 그러면 하고 싶은 걸 못하는게 문제.. 에스키셰히르 알리 사이드 만나서 바클라와라도 먹어야되고, 디야르바크르 스타 오텔 파룩한테도 얼굴이라도 한번 비치고 싶고, 옛날 탁심 살던 데하고 시린에블레리도 꼭 가봐야 되고, 토멜 앞에 있는 피데 집에 들러서 맨날 먹던 것도 먹고 싶고... 터키 내에서 고속버스비만 해도 한 15만원 깨질 듯.. 옛날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오른 나머지, 콧물이 눈 앞을 가린다.
일본에 가려고 해도 막상 그렇게까지 가고 싶지 않고, 터키를 가려고 하니 항공권 사고 나면 가서 손가락 빠는 수밖엔 없고. 어떻게 보면 100만원이 큰 돈인가 싶지만, 또 다르게 보면 정말 푼돈에 불과한 것 같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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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은 연구소/터키
2009/03/12 04:54
다소 간략하지만 '터키인의 행복론'이란 주제로 기고를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터키인의 행복론을 고찰하기에 앞서서 이슬람의 기본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슬람(Islam)'이라는 단어는 어근 slm에서 나온 것으로, 이 어근의 뜻은 '복종하다', '항복하다', '자신을 바치다'라는 뜻입니다. 이 어근이 사용된 문장의 실례를 보면 "aslama amrahu ila Allah", 즉 '그는 하나님의 의지에 자신을 맡겼다'는 뜻으로 slm이란 어근이 위에서 말한 바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slm이란 어근은 또한 '서로 화합하다', '화해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절대자(하나님)에게 순종함으로써 평화를 얻는다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처럼 이슬람은 이름 그 자체로 '신에 의한 평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염원하여 마음에 평안을 얻는 자들, 하나님께 대한 염원에 마음의 평안이 없겠느냐? 믿음을 가지고 많은 선행을 하는 자들, 이들에게 은총과 아름다운 귀향지가 주어질 것이다." (코란 13:28-29)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슬람은 현세에 대한 복락보다는 내세에 대한 희망이 신앙의 근간이 됩니다.
고로 터키인들의 사상 저변에도 현세보다는 내세에 무게를 두려는 무의식적 사고가 짙게 깔려 있는데, 이는 터키인, 나아가 무슬림들을 이해하는 척도가 됩니다. 터키를 비롯한 이슬람 국가들을 여행하는 외국인 여행자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평화로워 보인다'고 혀를 내두르는데, 이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하루하루의 생활이 힘겹더라도 꾹 참고 견딘다면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터키인들은 야망이 없어보인다'고 말하곤 하는데, 이 또한 반목과 대립이 거듭되는 현세를 낮게 취급하는데서 비롯됩니다. 어떻게 보면 허무주의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역으로 삶의 유한성을 인식하고 욕망의 기대치를 적절히 낮춤으로써 사소한 것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로 느껴집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바삐사는 한국인들이 한심해 보일 뿐이죠. '성실', '근면'이라는 말로 포장해가며 아둥바둥 거리는 것 같아도 돈도 욕구도, 그 어느 것 하나도 채우고 있는 것이 없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스스로를 제어하고 주관적인 행복을 찾아나갈 줄 아는 터키인들에게 배울 점이 많습니다.
저작자:아슬란 (외부기고문. 2008.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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